창밖은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찼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찼다  
거리의 불빛은 저마다 다른 색으로 깜빡이고  
바람은 간간히 나뭇가지를 스치고 간다  
사람들의 하루도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하나씩 저물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 오늘을 떠올린다  
별일 없던 하루  
눈에 띄는 사건도 없고  
기억에 남을 대단한 일도 없는  
그저 평범했던 하루  
그런데도 마음 한편은 묘하게 편안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도  
무언가 채워야 한다는 압박도  
오늘만큼은 이상하게 멀어진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는 것 같다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 특별한 곳에 가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날  
다른 사람들은 어디선가  
각자의 이유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텐데  
나는 내 자리에서 조용히 멈춰 있는 게  
오히려 더 괜찮은 것처럼 느껴진다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들  
그동안 미뤄둔 일들  
답장하지 않은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와도  
굳이 지금 다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모든 걸 빠르게 해치워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건 아니라는 걸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알게 됐다

창밖의 불빛은 여전히 그대로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지만  
내 마음은 이 고요함 속에서만은  
멈춰 있는 것 같다  
그런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세상과 조금 멀어져도 괜찮은 순간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결국은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해준다  
오늘처럼 아무 일 없던 날도  
내일이 오면 또 하나의 의미로 남는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내 하루가 쌓여간다